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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KU 소식

가톨릭관동대 소프트웨어학과 이병관 교수 정년 퇴임사

안녕하십니까? 가톨릭관동대 소프트웨어학과 이병관입니다.

오늘 이 자리는 명예퇴직 교수들과 함께 하는 자리인 줄 알고 참석했는데 두 사람(정년퇴임교수)만을 위한 자리인 줄은 몰랐습니다. 두 사람만을 위한 행사로 번거롭게 해 드린 것 같아 죄송하지만, 그래도 이 자리를 마련해 주신 총장님 이하 보직 교수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오늘 저는 교수 생활 32년 동안 가장 보람 있었던 몇 가지만 뒤돌아보고, 여기 계신 분들과 이 보람된 일들을 함께 나눠보고자 합니다. 

7년 전, 저의 학과를 졸업생 한 어떤 학생이 대학원을 진학하겠다며 저를 찾아 왔습니다. 졸업 후 학생의 장래를 생각해서 저희 대학보다는 여러 가지 여건에서 유리한 수도권에 있는 대학원으로 이 학생을 추천해서 연구비를 받는 조건으로 합격을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학생은 다시 저를 찾아와 저의 연구실에서 대학원을 다니겠다고 했습니다.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좋다. 그러면 지방대학교라는 핸디캡을 극복하는 방법은 실력밖에 없으니 실력으로 승부를 한번 걸어보자고 서로 간에 약속을 하고, 이 학생은 열심히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7년 동안 이 학생은 저와 함께 여러 건의 과제도 수행하고, 많은 SCI 논문도 만들어 냈습니다. 이 학생이 바로 이번 학기에 저의 가톨릭관동대 소프트웨어 학과 교수로 임용된 정이나 교수입니다.    

이번에는 2년 전에 석•박사 통합과정에 입학한 또 다른 학생이 한 명 있습니다. 이 학생은 지난 2년 동안 저와 함께 SCI 논문 8편을 만들었으며 다수의 논문을 주저자로 올렸습니다. 이 학생은 서울에 SKY 대학에 다니는 대학원생들과 견주어도 절대로 뒤지지 않는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이 학생의 이름은 제가 아끼는 손수락 학생입니다. 이 학생도 열심히 실력으로 승부를 걸어보겠다고 저와 약속을 하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학생이 어떻게 성장해 가는지 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 

또 다른 예로 17년 전, 강릉대학을 졸업하고 저의 연구실에서 석•박사를 마치고 강원대학교(삼척캠퍼스)에 교수로 임용된 분이 있습니다. 이 분의 이름을 밝히지는 않겠습니다. 졸업한 후에도 얼마 전까지 저의 연구실에서 연구원들과 같이 매주 연구를 해왔고, 많은 노력과  연구 열정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임용된 그해에 그 학과에 모 교수가 안식년을 다녀와서 가톨릭관동대 졸업생이 교수로 와 있는 것을 보고 노골적으로 몇 년을 무시하는 언행을 일삼았지만, 연구실적으로 매년 연봉 협상에서 최우수 대우를 받으며 실력으로 이를 저지했던 것입니다. 이 외에도 저의 연구실 졸업생들이 실력으로 이겨낸 경우가 많지만 시간 관계상 이 정도로만 하겠습니다.   

저는 34살(1988년 3월)에 이 대학에 교수로 임용되면서 오로지 재임용과 승진에 필요한 연구와 조그만 과제만을 수행하면서 그저 평범하게 30대와 40대 초반을 보냈습니다. 

 

 

 


40대 중반에는 안식년을 맞이하여 미국에 가서 남들이 다하는 골프는 근처에도 가지 않고 1년간 컴퓨터 보안 분야만을 공부하고, 귀국해서도 1년 이상을 보안 연구를 마무리하느라고 고생했습니다. 그 연구를 바탕으로 2002년도에 산자부 산하 산업재단에 과제를 제출해 약1억/년(3년 과제)(그 당시에 이승목교수, 김규한 교수, 저 포함해서 3명이 지원받음)을 지원받았던 것이 가장 보람이었고, 노력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로는 적은 연구비가 아니었습니다. 이즈음 저희 공대에는 많지 않은 교수가 연구재단 과제를 수행하는 것을 목도했습니다. 연구재단 과제는 결과물로 우수한 논문이나 특허 등을 제출하면 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산업재단 과제보다는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는 자유로운 면이 장점이었습니다. 이런 점이 부러워서 연구재단 과제를 수행하는 분들을 벤치마킹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저에게는 쉽지 않았습니다. 여러 차례 과제 제안서를 제출했지만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원인이 무엇일까 하고, 거듭 많은 시간 고민을 했습니다. 마침내 제안서에 교수 역량을 강화하고, originality를 보강하고, 평가위원들이 내용을 이해할 수 있게 가능한 쉽게 작성했습니다. 역시, 노력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이러한 요령으로 제안서를 계속 만들어 갔습니다. 
 
40대 중반까지 SCI논문을 써보지 못한 저에게는 SCI 논문을 쓰는 사람이 하늘같이 신비롭고 뛰어넘지 못할 존재로만 느껴졌습니다. SCI논문을 제출만 하면 reject 되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reject 되는 이유를 분석하고자 공학 분야 SCI 논문 다수를 분석해 보았습니다. 저의 논문과는 질적인 면에서 많은 차이를 발견했습니다. 먼저, 본문의 질은 말할 것도 없고, 성능 분석 면에서도 크게 질이 떨어진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부분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 후에야 비로소 accept 되기 시작했습니다. 역시 노력은 거짓말 하지 않았고, 그 후에는 높은 impact factor에 도전했습니다. 다른 대학에 우수한 교수들과 비교하면 우물 안 개구리지만 강물이 흘러갈 때 바위에 부딪치기를 반복하면서 목적지를 찾아가듯이, 능력이 부족했던 저에게는 노력만이 살길이었고, 하나씩 이루어질 때의 보람과 희열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가톨릭관동대 후배 교수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노력은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저는 30대, 40대 50대 60대를 거치면서 30대보다는 40대, 40대보다는 50대, 50대보다는 60대에 연구실적(과제 실적)이 더 많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저에게는 아직 에너지가 남아있기 때문에 정년이 좀 더 주어진다면 더 좋은 실적을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습니다. 

끝으로, 정들었던 대학에서 32년간 많은 혜택을 누리고, 행복한 교수 생활을 할 수 있게 해 준 대학에 감사드리며, 조용히 일선에서 물러나 자신을 돌아보고자 합니다. 바라건대, 가톨릭관동대가 더욱 더 발전해서 대한민국에서 우뚝 서는 대학으로 거듭나길 바라면서 정년 퇴임사를 마치겠습니다.
                                                                

 
 2020년 2월 21일 이병관